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에 대해 정부는 협상 방침을 밝히면서도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310여개가 연합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11일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을 배제한 채 협상을 개시했으며 3년간 협상 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는 등 독단적·배타적 추진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범국본은 그 동안의 반대론을 한데 모아 726쪽에 달하는 ‘한미 FTA 국민보고서’를 10일 출간했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아니면 ‘최강대국 미국과 약소국인 우리의 경제 통합 협정인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려는 의도에서다.
◇‘장밋빛 미래’ vs ‘양극화 심화’=정부는 미국과의 협정 체결이 고용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촉진해 경제 성장과 양극화를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기대는 ‘기대’일뿐 투기자본 침투와 비정규직 확대로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정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는 보고서에서 “양극화와 경제성장을 한 데 묶는 정부 논리는 모순적”이라며 “양극화는 성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장에도 불구하고 심화되는 현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부가 FTA를 졸속으로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한·미동맹 강화를 요구하는 정부내 주장과 미국과의 타협,한국 거대자본의 요구를 3대 요소로 꼽았다.
◇‘논란의 핵’ 금융 및 투자 분야=정부는 금융 서비스 분야에 대해 “파생상품 등 신 금융서비스 도입에 대한 조건을 계속 논의하고 국경간 거래와 관련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단체들은 FTA는 부속서에 유보가 명기되지 않으면 모두 개방을 허용하는 것으로 여기는 ‘네가티브’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없는 한국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가져다 줄 우려가 높다고 경고했다. 참여연대는 “미국의 초국적 자본의 한국 진출 가속화로 인해 또다른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면서 “금융업 신규진출과 규제완화를 추구하는 국내 재벌의 요구가 확대돼 금융자본과 산업 자본의 분리 원칙이 훼손될 우려도 높다”고 분석했다.
투자분야도 논란이 한창이다. ‘동북아 금융 허브’를 꿈꾸는 정부는 투자자 보호 조치로 해외자본의 직접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국민보고서에서 “과도한 보호가 외자유치 확대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인수·합병(M&A)와 포트폴리오(분산투자) 비율을 높여 투기성 자본의 보호장벽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도 “미국은 투기성 단기자금과 지적재산권까지 모두 투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외국 투자자들의 기업사냥감,고수익 단기차익을 보장받는 투기장화 위험이 높다”고 분석했다.
경제개혁센터 측은 또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제소할 수 있는 조항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소의 기회가 없고 중재 절차가 비공개이며 무엇보다 미국 기업이 패소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2차 협상을 통해 투자자 대 국가간 분쟁해결 절차의 이견사항에 대한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기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삶의 질을 위한 교육 의료 농업=정부는 교육 의료분야에서는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그리고 농업에서는 ‘쌀만큼은 지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쌀을 지키다 축산과 과일 등 농식품 분야에서 상당부문 양보를 하면 농업기반이 더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FTA에 숨어있는 괴물인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는 네슬레나 카길처럼 곡물의 가공과 동물사료 낙농제품 과일 뿐 아니라 종자 및 비료 등 농업 생산과 관련된 산업 전반에 진출해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춰 가공 뒤 판매하는 사업체다. 이들이 미국계 유통업체와 함께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내 농산물 시장은 물론 식량주권과 안전한 먹을거리 확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도 먹구름은 드리워져 있다. 정부는 “이 분야에서 미국은 의무교육과 공공분야에서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미 경제자유구역내에 학교와 병원의 영리 법인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체들은 이 분야 핵심쟁점이 투자 등의 다른 분야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다며 반박했다. 참여연대는 “외국학교 국내진출이 불가능했던 것은 송금관련 규제였는데 투자분야 협상에서 이 것이 허용된다면 상당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과 관련된 약가선별계약제도도 FTA의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다뤄지면서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와 충돌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