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 거짓말
제목 승리의 감동을 항쟁의 불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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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동규    
작성일 2006년 06월 19일 17시 15분 27초
한미FTA 1차본협상 저지 미국원정투쟁을 다녀와서 ;
승리의 감동을 항쟁의 불씨로!

김동규(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5월 19일 미국원정시위 중단을 촉구하는 정부담화문 발표를 전후로 미국원정투쟁을 준비하던 동지들의 미국비자는 대부분 거부되었다. 미국과 한국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중들은 원정투쟁을 포기할 수 없었고, 민중들의 힘과 지혜를 모아 원정투쟁을 준비하였다. 삼보일배, 장례식, 인간띠잇기, 촛불문화제, 협상단 그림자시위, 미국 노동, 농민, 시민사회단체, 정치권 면담과 공동성명 발표와 공동행동, 국제연대토론회, 워크숍, 간담회 등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후회 없이 펼치고 돌아왔다. 연인원 50여명 최소한의 규모였지만, 재미위원회의 동포동지들, 타민족동지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에 힘입어 1차 미국원정투쟁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남기고 힘 있게 마무리되었다. 1차 미국원정투쟁단은 이번 투쟁의 감동을 잊지 않고, 한미FTA저지 범국민항쟁의 불씨가 될 것을 약속하였다.

6월 2일

전체투쟁단 교양대회와 출정식을 민주노총에서 진행하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출국준비를 무사히(?) 마치고 8시 뉴욕행 비행기에 27명의 투쟁단이 몸을 실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투쟁단은 워싱턴에서 만날 계획이었다. 현지시간 6월2일 저녁 9시경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였고, 뉴욕에는 투쟁단을 반기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곧바로 차량으로 재미위원회 뉴욕책임자인 김은희, 육영운 동지의 집으로 이동하였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 간단한 환영행사를 펼쳐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가 몇 차례 돌면서 장시간 비행의 피곤과 타국에서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다.

6월 3일

숙소에서 짐을 챙겨 버스로 워싱턴까지 이동하였다. 미국버스에는 화장실도 있었다. ‘버스에서 술마시기는 참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5시간 정도 지나서 워싱턴 숙소인 워싱턴대학 기숙사에 도착하였다. 간단하게 짐정리를 하고 우리가 투쟁해야 할 미무역대표부, 백악관, 세계은행, IMF 건물 등을 답사한 후 재미위원회가 주최하는 환영의 밤에 참가하였다. 미국식 구호(Chanting)도 배우고, 현지법률에 대한 설명도 듣고, 동포들과 타민족동지들의 따뜻한 환영행사와 미국원정투쟁단의 인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6월 4일

오전에 시작된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반대, 한미FTA저지 국제연대토론회는 오후까지 이어졌고, 오후에는 워싱턴시내를 행진하였다. 국대연대행진은 미국과 한국의 집회방식이 잘 조화되어 워싱턴시민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저녁에는 백악관 앞 라파엣공원에서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반대, 한미FTA저지 국제연대집회를 개최하였다. 집회이후 국제연대의 밤에서는 타민족동지들의 노래공연, 동포동지들의 밴드공연 그리고 원정투쟁단의 노래율동공연이 이어졌다. 이 때 미국원정투쟁단의 귀염둥이(?)로 부상한 율동단 ‘워싱턴밧데리’(일명 불나방)가 데뷔행사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합창하면서 투쟁의 결의와 연대의 의지를 더욱 높였다.

6월 5일

드디어 1차 본협상이 시작하는 날이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미무역대표부에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투쟁단은 아침부터 무역대표부 앞을 지키고 있었다. 차량에서 내린 한국측 협상대표단과 마주치면서 투쟁단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풍물과 구호 그리고 함성으로 한국민중의 분노를 협상대표들에게 전달하였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한국민중투쟁단을 무시하듯이 아무런 표정도 말도 없었다. 오전 9시30분에는 전미 기자협회 특별기자회견을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진행하였다. 오종렬 원정투쟁단장을 비롯한 각계대표가 참석하여 한국원정투쟁단의 입장과 투쟁계획을 발표하였다. 오후에는 워싱턴시내를 행진하면서 ‘한미FTA가 한국민중과 미국민중 모두를 죽인다’는 기조를 중심으로 “DOWN DOWN FTA”를 소리높이 외쳤다. 저녁에는 라파엣공원으로 옮겨 촛불문화제를 진행하였다. 투쟁단의 손에 들린 촛불로 ‘NO FTA’ 글씨를 백악관 앞에서 환히 밝혔다. 부시도 백악관안에서 우리의 촛불을 보았으리라.

6월 6일

협상이틀째, 협정문의 30%정도 일치를 보았다는 언론보도에 더욱 분노한 투쟁단은 무역대표부앞을 지키며 투쟁을 계속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미 AFL-CIO와 승리혁신동맹 공동성명서 조인식과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오전에는 백악관 앞에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집회를 진행하고, 오후에서 한미노동자 연대집회를 뙤약볕아래서도 힘차게 전개되었다. 저녁에는 5부문 국제연대 워크숍을 열었는데, 나는 미국세입자. 노동자단체와의 워크샵에 참가하였다. 미국세입자, 노동자단체는 주로 중남미 이민자들로 구성된 전투성 강한 풀뿌리운동단체였다. 통역을 통한 대화였지만, 우리는 각자 삶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뜨거운 연대의식을 높여갔다. 미제국주의에 의한 민중의 수탈은 한국이나 미국 내 이민자, 중남미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한 활동가의 동료는 국경을 넘어오다가 말라죽었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 단체에서 마지막으로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기념촬영, 단체복을 교환하며 아쉬움의 정을 나눴다. 미국현지에서 자신들이 열심히 투쟁하는 것이 결국 한미FTA저지하는 연대투쟁이고, 미제국주의와 맞서 이기는 것이라는 한 활동가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6월 7일

미의회에서 투쟁단으로 참가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쿠치니치 의원을 포함한 미민주당 4인의 합동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이후 미의회 앞에서 삼보일배를 시작하였다. 타민족 동지과 동포동지들이 함께 하였다. 풍물소리에 맞춰 “DOWN DOWN FTA” 구호에 맞춰 한걸음 한걸음 함께 나아갔다. 워싱턴의 땡볕아래서 삼보일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동지들의 ‘한미FTA저지’의 하나된 마음으로 삼보일배를 무사히 마치고 저녁에는 숙소 야외옥상에서 중간평가 및 단합대회를 진행하였다. 이제 협상도 중간을 넘어가고 있다.

6월 8일

한국협상단이 묵고 있는 숙소에 이른 아침부터 찾아가 협상단을 괴롭혔다. 그리고 오전에서 론스타 투기자본에 대한 장례식을 세계은행, IMF앞에서 오후에는 초국적 농업자본에 대한 장례식을 카길사 사무실에서 진행하였다. 상여소리에 맞춰 민족적 방식으로 한국민중의 이름으로 초국적 투기자본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 시간 몇몇 동지들은 미의회 의원과 보좌관 면담을 진행하였다. 한 민주당의원은 “자신도 노동자출신이라며 자신이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도시락가방을 사무실에 비치해두고 노동자정체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출신 주에서만 NAFTA이후 일자리가 23% 줄어들었다며 NAFTA식 FTA는 미국노동자에게도 고통임을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늦은 오후에는 미 무역대표부 인간띠잇기를 진행하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손수건, 티 등 모든 걸 동원해서 미 무역대표부를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6월 9일

협상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도 협상단 숙소 앞을 찾아가 그림자시위를 진행하였다. 오늘은 농축수산대책위와 전미가족농협회의 공동기자회견이 개최되는 성과를 남겼다. 오후에는 미무역대표부 장례식을 진행하였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서도 신나게(?) 장례를 치렀다. 오후 늦게 이번투쟁의 마지막투쟁이 될 국제연대집회를 라파엣공원에서 힘차게 진행하였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신나게 비를 맞으며 투쟁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전체평가 및 마지막 단합대회로 우리는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밤을 결의높게 보냈다.

6월 10일

1차 본협상이 끝났다. 어제 저녁에 협상단이 기자브리핑을 진행했다고 한다. 마치 성과라도 낸듯이 자랑스럽게... 투쟁단은 오전에 숙소를 정리하고 뉴욕으로 이동하였다. 첫날처럼 김은희, 육영운 동지의 집에 짐을 풀고 동포단체인 자주연합사무실 방문하여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저녁식사 이후에서 뉴욕시내 쌍둥이빌딩을 찾아갔고, 페리호로 자유의 여신상도 구경하였다. 소호거리에서 술도 한잔하면서 투쟁에 대한 평가와 석별의 정을 뜨겁게 나누었다.

6월 11일

오전에는 미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산, 뉴욕시내를 둘러보고 저녁에 동포청년단체인 ‘노둣돌’사무실 방문하여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6월12일 00시35분 뉴욕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쁘지만 한편 아쉬움 마음으로 남긴 채...

6월 13일

새벽 4시 인천공항 도착하였다. 우리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많은 동지들이 나와 있었다. 오전10시 광화문에서 열린 보고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미국원정투쟁단의 공식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이번 미국원정투쟁은 우선 미국의 노동, 농민, 사회단체 및 정치권 그리고 미국시민들에게 한미FTA협상의 문제점을 알리는데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미국현지단체들과 연대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900만 조합원의 AFL-CLO와 600만 승리혁신동맹과 공동으로 한미FTA중단을 요구하고 실천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고,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은 민주당 데니스 쿠치니치 의원을 비롯한 3인 의원과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양국의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확대조직하기로 결의하였고, 7월 2차본협상시기 공동투쟁과 9월 3차본협상시기 가칭 ‘한미 FTA가 양국민에게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다. 농축산대책위도 미국의 영향력 있는 전미가족농협회와 한미 FTA를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구체적 성과를 남겼다.

또한 재미위원회와의 연대를 비약적으로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애초 미국원정투쟁단은 재미위원회를 이번 투쟁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고민했다가 실제 투쟁과정에서 이러한 관점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재미위원회와의 전략적 연대를 상승시킬 것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재미위원회와의 연대는 이후 한미FTA 저지투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 변혁과 통일운동에 있어서 의미있는 국제연대의 모범으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이번 투쟁은 한미FTA에 대해 무관심했던 미국현지 언론을 향해 한미 FTA를 주목할 문제로 끌어올렸고, 한국언론에 있어서도 월드컵기간 한미FTA협상이 사장될 우려가 많았지만 원정투쟁을 통해 한미FTA를 국민들속에서 회자되게 하였다. 평화적이고 창조적인 투쟁방식은 미국원정투쟁의 정당성을 돋보이게 하였고,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상승시키는데 의미있는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미국원정투쟁은 한미FTA저지 투쟁의 감동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미국원정투쟁단이 앞장서서 이번 투쟁의 감동을 밑거름으로 7월 12일 2차 범국민대회를 범국민적 투쟁으로 만드는 불씨가 될 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을 안겨준 재미위원회 동포동지, 타민족 동지들의 헌신과 열정, 투쟁의 신심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한국민중의 이름으로 전한다.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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