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한·미 FTA 15년 뒤 대한민국은…
경향신문 30면4단| 기사입력 2011-01-20 21:07
“한·미 FTA로 경제영토가 넓어집니다. 이제, 세계가 당신의 시장입니다.” 요즘 지하철에 나붙은 광고 문구이다. 5년 전에는 이랬다. “한·미 FTA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의 선택입니다.”
벌 써 5년째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다. 한·미 FTA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하 나프타)은 17년이 되었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맞았고 2009년 멕시코는 마이너스 7.1%라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광고대로라면 멕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경제영토가 넓은 나라이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 멕시코의 수출은 311% 증가했고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3배나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은 연평균 1.6%에 불과했다. 특히 2000년에서 2009년까지는 0.9%로 더 떨어졌다. 이 기간이 미국 사상 최장의 호황기였는데도 그랬다. 급기야 2008년 멕시코는 대기업의 외채를 갚느라 외환보유액의 3분의 1을 써야 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으로부터 긴급 달러 수혈을 약속받아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멕시코의 총투자율은 2000년까지 미미하게 증가하다 그 이후 20% 부근에서 오히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멕시코·캐나다 경제지표 악화
외국인 직접투자가 국내 투자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FTA로 인한 대대적 구조조정으로 멕시코 국내 제조업, 특히 부품산업이 붕괴했고 옥수수 농업은 말 그대로 궤멸됐다. 실질임금과 고용은 아직도 1996년 수준 이하에 머물고 있다.
멕 시코 국내 은행은 민영화를 거쳐 미국과 스페인 은행에 인수·합병됐다. 1997년 2%에 불과했던 외국인 소유 은행 자산은 이제 83%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의 소원대로 선진 금융기법이 도입됐다. 민영화한 멕시코의 공기업들은 너도나도 값싼 달러를 빌렸고 당연한 것처럼 파생상품에도 손을 댔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외국계 은행들은 달러를 본국으로 보냈고 멕시코는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동시에 맞은 상황에 빠졌다.
5년 전에도 그랬듯 이제 정부는 멕시코와 한국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물론 다르다. 그렇다면 미국을 능가하는 자원부국이고 유럽형 복지체계를 갖추고 있던 캐나다는 어떨까? 캐나다는 멕시코와 같은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다. 캐나다 은행은 왕립은행(chartered bank)의 전통에 따라 도매시장이 아닌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했으며 그림자금융 등 위험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자본 규제도 바젤II보다 더 강했다. 즉 캐나다의 금융부문만큼은 나프타의 민영화, 규제완화 기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1인당 경제성장률도 1.2%(2000년에서 2009년까지는 1.1%)에 머물렀다. 실질임금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겨우 4% 늘어났을 뿐이며 제조업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구나 아메리카의 복지국가라던 캐나다는 소득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08년에는 지니계수가 한국을 추월했다. 나프타 이후 캐나다의 공공사회지출/국내총생산(GDP) 비율이 5%포인트가량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코의 생산성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고 캐나다의 경우 2000년 이후에 격차가 오히려 확대됐다. 한국 정부는 한·미 FTA를 맺으면 1%의 생산성이 향상돼 경제성장률이 5%가량 추가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신비스러운 일은 캐나다와 멕시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생산성·소득증대 환상 버려야
나 프타는 두 나라에 초헌법 또는 외부헌법의 역할을 했다. 이 헌법은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지시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미국식 FTA의 영향도 차이가 난다. 과연 한국의 지배계급은 캐나다형일까, 아니면 멕시코형을 추구하고 있을까? 어느 쪽이든 복지의 확대는 불가능하지만 멕시코형이라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답을 익히 알고 있다.
<정태인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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