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이 초래한 비극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1994년 발효된 이래 멕시코는 OECD국가 중 소득불평등 1위 국가가 되었다. 제조업 고용과 임금은 1993년에서 1999년에 이르는 동안 각각 2%, 22.4%나 떨어졌으며, 최저임금도 23.2%나 하락했다. 최저임금 이하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9%에 이르고 빈곤층 인구비율은 40%를 넘고 있다. 의료, 보험, 교육과 같은 공적서비스는 사유화/민영화의 압력에 직면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망은 와해되었다. 농업부문은 130만 명이나 일자리를 잃을 정도로 초토화되었다. 특히나 자유무역협정이 가져다준다던 서비스 산업의 확대의 일자리 창출의 희망은 금융,보험,의료,교육 서비스에 대한 초민족적 기업의 장악력 확대, 극소수 부유층의 수혜의 결과로 그 허구성이 드러났다.
이른바 자유무역 체제는 ‘평등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전 세계 국가들의 소득을 증진하고 고루 분배할 수 있다는 선전을 펼쳐왔지만, 그 참혹한 결과는 이제 비단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FTA(양자 간 자유무역협정), RTA(지역적 자유무역 협정) 등 다양한 전략으로 발전되어왔다. 지난 한칠레 FTA 체결과정과 그 이후를 보더라도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특정산업의 붕괴의 효과는 비단 특정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비교우위론을 내세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붕괴된 농업의 현실을 핸드폰 등 가전 수출의 일종의 그늘로 치부했으며, 극소수 독점 자본에 집중되는 수혜를 ‘국익’으로 포장해왔다. 더군다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전면적인 사회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한층 파괴적이다. 의약, 환경, 교육, 농업, 문화, 제조업 등 전반에 걸쳐 야기될 사회적 변화는 노동자민중의 삶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무역’이 민중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극도로 유연화된 노동력 제공자로서 ‘죽지 않을 정도의’ 빈곤을 감내하며 순응하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두 마리 토끼, 양극화 해소와 한미 FTA 체결은 양립 불가능하다
노무현 정부는 국정운영의 우선 순위를 양극화 해소와 한미FTA 체결에 두고 있다. 양극화해소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제시하며 한․미FTA체결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갖고 있거나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서비스 부문의 발전을 촉진시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 불평등도를 개선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특히 “한미FTA는 참여정부의 동반성장 전략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것”이라며 “시장경제의 대표주자인 미국 경제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양극화 대응을 본격화해 시장경제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사회통합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정부는 소득 양극화/노동시장 양극화/산업간 양극화라는 단계 틀을 적용하면서, 근로소득 내 불평등을 문제삼아왔다.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 → 소비 증가에 따른 시장 활성화 → 기업하기 좋은 나라 → 경제 활성화’라는 지속가능한 성장 논리를 소개하고, “시장이 활발하면 규제가 있어도 투자가 이뤄지고, 규제가 없더라도 시장이 죽으면 아무도 투자를 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의 분석 틀과 해소 방안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전체 인구의 13.5%에 달하는 빈곤율은 단지 소득 양극화로 설명될 수 없다. 소득이 최저생계기준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2006년 현재 117만원) 12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가 716만 명에 달하고 이 중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혜를 받는 이가 138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다수 인구가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에 처해있다는 반증이다. IMF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온 구조조정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시켰고, 빈곤율과 실업률은 증가해왔다.
이는 한국 경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의 통합되어온 결과다. 금융 원리가 기업의 핵심 운영 원리로 관철되는 상황에서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배당할 단기적 이익 확보가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이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 스스로가 만든 투자의 억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산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는 한편,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핵심인 자본자유화에 힘입어 국부유출과 자본도피가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와 성장이 이루어질 리 만무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철회 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호도하고 있다.
현재 지배세력이 내세우는 사회 양극화 담론의 일차적 문제는 한국자본주의가 처한 구조적 위기 및 변혁이라는 문제를 은폐한다. 신자유주의와 고용확대라는 양립 불가능한 처방을 결합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부추긴다. 정부의 양극화 해소 방안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사회서비스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인구의 평준화를 이뤄내 소비를 활성화하자는 것인데 이러한 일자리 창출 계획의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채워지고 있다. 또한 양극화 해소의 핵심 방향은 일정한 자산을 가진 집단 곧 ‘중산층’을 보호하여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자는 것인데, 금융세계화 하에서 지배계급이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소득을 건드릴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결국엔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을 이전해 중산층의 자산소득을 보충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조치들은 금융화와 빈곤화 경향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가 자초한 경제위기 상황을 과거 군사정권의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으로 인한 과잉중복투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동시에 서비스와 지식기반 경제 중심의 성장과 노동유연화의 확대를 통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이미 드러나고 있다며 경제회복의 근거로 “경제성장, 수출액, 주가지수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IMF 사태를 기준으로 대부분 2배 이상 상승”했다는 사실을 꼽고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의 외피를 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주변국가의 항상적인 경제위기를 기반으로 경쟁한다. 금융투자자들의 ‘단기주의’와 전 세계적인 금융적 불안정성에 의해 경제위기는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국가경제에 있어서 금융부문의 발전을 목표로 사회 전 부문의 세계표준화(글로벌 스탠다드)를 줄곧 추진해왔지만, 그 결과가 불안정성의 확대와 국부의 유출로 드러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야말로 사회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빈곤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활성화로 한미 FTA 저지하자
전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FTA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투쟁에 있어 특정 산업의 자유화의 물결로부터의 보호나 거부 역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FTA 저지투쟁은 보다 근본적인 싸움이다. 빈곤과 양극화를 해결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그 수혜를 고루 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배세력의 허구적 주장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싸움이며, 사회 변혁을 고민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대중, 빈곤대중의 삶의 권리를 천명하고 확대하는 투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 해소는 한미 FTA 체결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과 결코 병행될 수 없다. 사회 위기관리를 위한 양극화 해소와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한미 FTA 체결이 아닌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철폐,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철회를 위해서는 민중의 지혜를 나누고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한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의 발언권을 확대하고 오늘날 대다수 민중을 일컫는 빈민의 요구를 확대해야 한다. 그를 위한 소통과 연대의 공간을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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