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며
- 한미FTA 제8차 협상 폐막에 즈음하여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성과 없이 한미FTA 제8차 협상이 끝났다. 8차 협상에서는 경쟁, 정부조달, 통관절차 등 상대적으로 쟁점이 덜 형성된 사안에 대한 ‘잔가지’ 치기가 마무리되고 자동차, 쇠고기, 농산물 등 중요 부분은 대부분 고위급 협상으로 이월되었다.
각계각층의 반대 집회와 시위, 입장 발표가 줄을 잇는 가운데 ‘중국과의 마늘협상당시 불법 이면합의를 하여 국민들을 기만한 전력’을 가진 한덕수 한미FTA 체결지원회위원회 위원장이 총리로 지명되었고 협상내용은 투명한 공론의 장을 벗어나 고위급 관료들의 밀실야합의 공간으로 이동하였으며 반대 의견은 원천봉쇄와 곤봉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써 한미FTA 협상은 실무협상을 끝내고 3월말 최종 타결을 앞둔 마지막 순간으로 접어 들고 있다. 한미FTA 협상이 3월말이라는 미 TPA법상의 최종 시한을 앞둔 중대한 시점에 접어 든 이 시각, 지난 1년간 한미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해 싸워 온 우리는 불퇴전의 결의를 모아 우리의 입장을 내외에 밝히고자 한다.
첫째, 한미FTA 협상은 전형적인 퍼주기일변도의 굴욕적인 매국 협상으로 전락하였다.
한번 말해 보라.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측이 얻은 이익이 무엇인가? 무역구제 협상은 ‘비합산조치’에 대한 요구를 한국측이 양보하면서 결국 빈 껍데기만 남았고, 자동차 분야 협상은 우리의 요구는 실종되고 상식을 뛰어 넘는 미국측의 공세로 도리어 방어해야 할 쟁점으로 부상한 상태이며, 섬유의류 분야에서의 수출 증대 효과는 미국측의 거부로 거론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왜소화되었다.
고위급 협상으로 이월된 것은 대부분 미국측의 요구를 어느 수준에서 막을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미국측 정치 일정에 맞춘 한국측의 ‘묻지 마’ 타결 의지가 확인될수록 미국측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점이다.
자동차 분야에서 미 의회 칼 레빈 ‘오토 코커스(미 의회 자동차 모임)’ 공동의장, 찰스 랑겔 하원 세입세출위원장, 샌더 래빈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무역소위원장 등 15명의 상하원 의원들(민주당 9명, 공화당 6명)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산 차에 대한 한국의 자동차 관세(8%) 즉시 철폐, 한국산 차에 대한 미국의 승용차 관세(2.5%) 15년 이상 장기간에 걸친 철폐 및 픽업트럭 관세(25%)의 개방 제외”와 “한국산 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기 전에는 매년 미국산 차의 ‘대한수출’ 증가분만큼에 대해서만 한국산 차에 무관세 혜택을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제8차 협상에서는 미국의 자동차 분야의 관세인하를 한국측은 ‘3년 이내’로 할 것을 주장하고 미국측은 ‘15년 이내’를 고수하는 비참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쇠고기 분야에서는 고위급 협상을 통해 한국측이 뼛조각이 들어 있는 상자만을 반송한다는 위험하고 또 굴욕적인 양보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뻔뻔하게도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하라는 요구를 거리낌없이 해대고 있다.
농산물 분야에서도 한국측이 개방 예외 품목을 점차 축소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역으로 개방요구 품목의 확대를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이 정말 정부와 정부 사이의 정상적인 통상협상이란 말인가?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마구 ‘퍼주기’해서라도 ‘묻지마’ 타결에 집착하는 한국 정부의 막무가내식 자세와, 상대방의 약점이 노출될수록 더욱 집요하게 허점을 파고드는 미국의 신제국주의적 행태가 낳은 결과이다.
둘째, 한미FTA 협상의 본질이 명확해질수록 정부당국의 공갈과 협박, 은폐와 탄압 시도도 도를 넘어 서고 있다.
경찰의 초법 행위도 도를 넘어 선 지 오래이다. 지난 3.10. 전국 곳곳에서 서울 상경을 막으려는 경찰의 영장없는 강제연행과 불법구금이 이어졌고, 지하철역을 무정차 통과시키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법행위가 벌어졌으며 물대포를 쏘아대고 기자와 일반시민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이런 가운데 점차 협상 내용은 공론의 장을 떠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세계화의 맹신자들, 범죄행위와 매국을 일삼고도 특혜와 승진을 거듭했던 고위 매판관료들의 밀실야합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와 신자유주의세계화에 환장한 관료들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 오래이며 당신들의 심장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를 물을 이유도, 또 쓰러져 가는 서민 대중의 생활고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넋을 빼앗긴 대통령과 그 그늘 아래서 미국 등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영화와 특혜를 누려온 자들이, 오늘은 경찰력으로 뒤덮인 휘황찬란한 호텔에서 희희낙락할지라도 내일은 역사의 심판장에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상황은 명백하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지체할 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한미FTA 협상이 촌각을 다투는 엄중한 시점에 접어 든 이 시각 우리는 필사즉생의 각오로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한다. 이미 민주노동당의 문성현 대표는 3월8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노상 단식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문성현 대표의 단식 투쟁에 이어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이름을 걸고 집단 단식투쟁에 들어간다.
우리는 역사와 민중이 부르는 길에서 앞장서 나가 싸울 것이다. 각자의 처지와 입장이 다를지라도, 경제주권과 민중의 생존권, 사회적 공공성과 문화적 다양성, 안전한 먹거리와 식량 주권, 그리고 환경을 지키고 정의와 양심의 입장에 서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다 우리의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이중삼중 경찰력으로 둘러쳐진 밀실 공간에서 이뤄질 비열한 음모를 막아 낼 것은 거리의 민심이고 싸우는 민중의 힘뿐이다. 다시금 일어나 3월의 거리를 투쟁의 함성으로 장식하자. 결사의 각오로 한미FTA를 저지하자!
2007년 3월 12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