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의 문
망국적인 한미FTA 협상이 끝내 타결되었다. 지난 1년간 한미FTA 협상을 저지하는 길에서 굽힘 없이 싸워 온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온 국민의 의지와과 염원을 담아 이번 한미FTA 협상이 ‘전면무효’임을 선언한다.
한미FTA 협상은 당초 경고했던 바대로 ‘얻는 것 없이 마구 퍼주기’ 협상, 또 국민주권과 건강권․생명권을 위협하는 망국 협상으로 귀결되었다.
먼저, 한미FTA 협상을 통해 한국측이 얻을 것으로 표방되었던 기대이익은 사라졌거나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존스액트’(미국 내 인적·물적 자원은 미국적 배나 항공기로 수송돼야 한다는 법규정)의 완화나 ‘항만유지수수료의 폐지’와 같이 한국측에 나름대로 이익이 될만한 항목은 아예 사라지는 대신 ‘물품취급수수료의 면제’와 같은 부스러기 하나 얻는데 그쳤다. 또 무역구제와 전문직 비자쿼터 등 한국 기업이나 한국 전문인들의 고용증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만한 분야에서의 협상 성과는 속빈 강정이 되었거나 아예 무산되었다.
정부가 대대적인 성과로 포장하고 있는 자동차와 섬유의류 분야에서의 수출 증대 효과는 미미하거나 오히려 기만에 가깝다. 나름대로의 이익이 기대된다는 3천cc 이상 승용차는 협정발효 후 ‘3년내 철폐’로 합의되었는데, 3년 후면 이미 현지 생산비율이 대폭 높아진 상태가 되어 실질적인 관세 철폐의 혜택이 별로 없고, 또 픽업트럭은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또 섬유의 경우에도 전면적 ‘얀포워드 예외’를 받았던 미-싱가포르FTA보다도 훨씬 후퇴된 수준인 6-20개 품목 정도만 ‘원사기준 원산지인정’(얀포워드 규정)의 예외를 인정받는데 그쳐 경제적 실익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 정부가 자동차와 섬유의류 분야에서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양보를 한 점이다. 한 부문산업의 경제적 이익에 불과한 자동차 관세철폐를 얻기 위해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의 변경’이나 ‘승용차용 배기가스 측정장치의 장착 의무 2008년까지 면제’와 ‘신속 분쟁해결절차의 도입’과 같은 미국 측의 수많은 요구를 수용하는 등 조세주권과 환경주권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또 섬유의류 분야에서는 기업체의 경영정보를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서푼어치도 안되는 섬유의류분야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 댓가로 ‘유전자조작생명체(LMO)의 검역을 간소화’하기로 합의하여 국민의 생명과 건강문제를 덜렁 양보해 버리는 망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최종 협상에서 한국정부가 자동차와 섬유의류 분야에서의 협상 성과를 얻기 위해 분투한 것이 아니라, ‘묻지마 협상 타결’ 양상을 분장하고 ‘선전홍보용의 협상 성과’를 갖추기 위해, 국익과 조세주권, 환경주권 그리고 건강권․생명권을 마구잡이로 포기하였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선전해대고 있고 제도언론이 이를 “받아쓰기”하며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바와 같은 자동차.섬유의류 분야의 성과가, 이른바 막판 빅딜이 아니라 국민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거대한 사기극임을 지적하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반면 한국측의 피해는 아예 이를 측정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농업은 이미 개방일정이 확정되어 협상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이 개방되었다. 유예 기간이 지나고 나면, ‘돈 되는’ 극히 일부의 작물을 제외한 이 땅의 농업은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이후 한-중 FTA, 한-EU FTA 등이 예고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의 농업포기 선언이라고 하겠다. 더욱 분통터지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통상․경제 관료들이 아예 드러내 놓고 농업 말살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지적재산권 분야도 사실상 미국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되었다. 이로 인해 ‘IT 강국’이라는 한국은 이제 저작권과 그 집행의 강화를 통한 미국의 ‘디지털’ 지배권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 미디어기업과 다국적 제약회사의 독점이윤을 극대화하는 대신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부합하는 지적재산권 제도와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한 공공정책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인데도, 한국정부는 지적재산권의 강화가 바로 선진화라고 외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제조업의 경우 정밀화학․정밀기계․의약산업 등 정작 중요한 고부가가치 산업들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면서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선진국 도약의 발판이라며 섬유의류.신발과 같은 저부가가치 산업의 수출 증대가 성과라며 선전하면서, 도리어 고부가가치 산업을 마구 개방해 대고 있는 모습은 앞뒤가 모순되는 것이며, 또 한미FTA 협상에서 변변한 가시적 성과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의약품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여 국내 의약품 가격이 상승하여 건강보험 재정부담이나 국민부담이 폭등하고, 국민건강권에 심각한 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 복제약 중심의 국내제약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될 것임이 분명하다.
스크린쿼터의 ‘현행유보’, 방송쿼터의 확대 및 지분제한의 철폐 등으로, 막강한 미국 영화자본의 힘 앞에 한국의 영화는 생존의 위기를 맞이하였고, 또 방송통신 분야에서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는 영세 사업자의 몰락, 미디어 공영성의 훼손, 문화 다양성의 파괴를 통한 우리 문화 고유성 파괴와 나라의 ‘미국화’를 완성하게 될 위험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법률.회계 서비스 시장의 개방, 금융시장에서 국경간 거래와 신금융서비스의 허용 등 쟁점이 되었던 대부분의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되었다. 또 투자분야나 서비스 분야 등의 신통상이슈의 경우도 몇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른바 분쟁 해결 절차와 협상 원칙에 대한 합의를 통해 경제주권과 사법주권 등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점이다.
‘투자자-정부 제소’제도, ‘비위반제소’제도 등이 수용되었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미간 협의기구’가 설치되어 향후에도 미국이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와 통로가 마련되었다. 결국 ‘투자자-국가 제소’제도의 수용은 초국적기업 등 투자자의 이윤보장을 위해 온 국민을 위한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킬 것이다.또한 ‘부동산가격정책’을 제외한 용적률, 그린벨트, 도시계획 등 십 수가지가 넘는 부동산 정책이 결국 ‘투자자-정부 제소’ 대상이 되고 말아, 심각한 부동산투기 문제 해결을 위한 공공정책의 수립에 결정적인 제약이 되고 우리 헌법상 명시된 ‘부동산 공개념’의 근저를 헐어 내리는 폭탄을 안방으로 들여오게 된 셈이다.
또한 서비스 분야에서의 네거티브 리스트 채택, 래칫 조항(개방의 역진 금지 원칙), 미래 최혜국 대우 등의 합의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능성을 미리 잠식․차단하는 우리 세대의 역사적 범죄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미래산업육성을 희생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향후 시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보완․시정할 수 없고 단지 개방을 확대하는 기조로만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독소조항이다.
한미FTA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근거한 환경정책과 환경규제 등과 같은 환경주권을 침해하며 광우병 쇠고기, 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의 무분별한 수입을 유발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공기업을 해체하고 교육과 의료시장에 대한 시장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한미FTA로 인해 사회공공성은 무차별적으로 파괴될 것이고,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며, 유연한 노동력을 요구하는 초민족적 자본은 비정규직을 대량 확산시키며 이 땅의 청년학생들에게 실업자로 살아갈 것을 강요할 것이다.
또한 한미FTA는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핵폭탄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여성노동자의 고용불안과 비정규직화, 가사양육 노인부양 등 돌봄 노동의 상품화, 농업파탄으로 인한 여성농민의 빈곤화 등으로 몰아닥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주목하는 것은 협상과정에서 이면합의 등 부도덕한 불법행위가 자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아직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허위와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개성공단을 둘러 싼 진실은 무엇인가? 김현종과 바티야의 말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어떻게 된 것인가? 대통령은 합리적 수준의 개방 운운하는 가운데 농림부 장관은 이면 합의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쇠고기 수입 없이는 한미FTA가 없다며 협박하고 있다. 협상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거래가 있었는가? 또한 이번 협상의 주역들인 김현종과 이혜민은 같은 날, 한쪽에서는 재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발언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재협상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는 등 협상이 타결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혼선과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협상 기간내내 경찰력을 동원하여 반대 집회와 시위를 원봉쇄하고 서울상경을 막기 위한 ‘출발지 봉쇄’(불법감금)과 지하철역 출입봉쇄를 자행하는 등 군사독재식 탄압과 헌법유린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는 농민들의 ‘한미FTA 반대’ 광고까지 사실상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이래 놓고도, 묻지마 타결을 강행한 이후에는 ‘토론’이니 ‘대책’이니 입에 발린 소리를 내뱉고 있지만 실제로는 실질토론의 대전제인 ‘타결협정문 초안’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등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고 특히 농민과 노동자 등 서민 대중을 우롱하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음은 명확하다. 김현종에게 협상전권을 맡긴 것도, 불법행위를 저지른 한덕수를 총리에 앉힌 것도 대통령이며, 협상 결과를 최종 승인한 것도 결국은 노무현대통령이다. 또한 밀실졸속협상을 추동하고 집회시위와 같은 헌법상의 기본권조차 유린되도록 방치한 것도 결국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다.
우리는 한미FTA 협상타결에 이르는 과정까지 망국적인 협상을 시작, 진행하고 망국적 협상타결을 최종 승인한 노무현 대통령, 또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책임을 지고 노무현 대통령이 마땅히 퇴진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대통령과 행정부의 독단을 견제할 책임이 있는 국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방기할뿐더러 더 나아가 앞장 서서 정부의 망동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 즈음해, 이에 대해서도 강력히 경고한다. 현재 국회와 언론이 보여주는 모습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국정을 함께 농락했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이런 행위가 지속될 경우 국회와 언론 또한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엄중 경고한다.
한미FTA 협상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지난 투쟁 과정에서 우리는 피맺힌 농민과 영화인들의 절규를 공유하였으며, 함께 연대해 일어난 노동자․농민․시민의 힘을 알았다. 또 진실을 외치는 각계 지식인과 청년․학생, 방송인과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와 함께 싸웠으며, 우리의 절반이자 전부인 여성들의 한맺힌 외침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성원하는 소리없는 서민대중과 국민이 있음을 알았다.
다시 일어나 싸우자!
결사적인 단식투쟁과 촛불시위에서 맺어진 단결의 힘이 우리에게 있다. 협상 막판 분신으로 저항한 허세욱 동지를 기억하자. 오늘 비록 장밋빛 미래를 선전하는 허황한 광고들이 거리를 메우고 미국과 노무현정부, 보수언론과 관료들의 벽이 두터워 보일지라도 단결해 싸우는 민중의 힘을 당할 수 없다. 깨어나 함께 투쟁에 나서는 시민의 힘을 이길 수 없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현 시점, 우리의 판단이 옳았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민중의 힘을 믿고 다시 일어나 싸우자!
국민의 힘을 받아 기필코 한미FTA를 저지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
2007년4월7일
한미FTA 저지범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