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저마다 목청을 돋우며 다툼의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협정의 전신인 한-미투자협정(BIT)의 경과과정을 살펴보면 많은 시사점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7년전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투자협정에 온 힘을 쏟았다. 그 당시에 미국은 포괄적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방위적 어려움에 빠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그리고 ‘줄기차게’ 통상압력을 가해 왔다. 미국은 우리나라 쇠고기 수입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WTO에 제소했고, 영종도 신공항에 설치할 엘리베이터 입찰과 관련해서도 역시 WTO에 제소할 뜻을 비쳤으며, 우리 정부가 한보철강을 매각하고 포항제철의 가격결정에서도 개입한다고 투정부렸고, 의약품에 대해서도 외국제품을 한국제품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서 외환을 확보하고 국가 신인도를 올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김 대통령은, 1998년 6월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BIT체결을 ‘제안’했다. 외자유치의 명분과 필요성이 절박했던 탓에 이 협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많았으나 그대로 추진됐다. 게다가 김 대통령이 ‘직접’ 미국에 협정체결을 제안했기 때문에 협상과 관련된 정부부처의 공무원들은 반대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1994년 미국이 이 협정의 협상을 제안했을 때,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던 한국이 이번에 협상체결을 먼저 제안한 꼴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미’ 외국인이 자유롭게 마음껏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협정을 맺는다고 투자가 더 늘어날 소지가 적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조사에 따르면, 90년대 초반 미국과 투자협정을 맺은 13개 국가 가운데 협정을 발표한 다음 3년 동안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 나라는 고작 3곳에 불과했다. 또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자간 투자협정에 따른 투자유치의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양자간 투자협정은 다른 국가와의 주권행사에 운신의 폭을 좁게 해서 오히려 국제무대에서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국은 스크린쿼터제 폐지, 외환위기 때 외환거래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세이프가드 불인정(다자간 투자협정에서조차 세이프가드를 인정하고 있다), 공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제한 철폐, 국산 잎담배 사용의무철회, 연근해어업 외국인 참여제한 철폐, 저작권 소급보호, 미국의 주법에 의해 한국기업을 차별대우할 수 있는 권한 인정 등 불평등한 사안을 수용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특히 외국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한 경우 외국기업은 고용승계 의무, 현지인 일정비율 고용의무,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 또한 이들에게 일정한 환경기준조차 요구하기조차 어려워서 우리 국토의 황폐화가 우려됐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미국은 외국기업과 우리 정부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뉴욕의 국제분쟁조정센터의 결정을 국내법원의 결정에 ‘우선’하도록 요구했다. 이 센터는 주로 미국기업이 FTA나 BIT를 근거로 개도국 정부를 제소하는 곳이다. 2006년 4월말 현재 이 센터에 계류 중인 사건은 103건이다. 제소자는 모두 다국적 기업이고 제소당한 국가는 아르헨티나(35건), 멕시코(7건), 에콰도르(5건), 루마니아(5건), 이집트(5건) 등 38개국으로 하나같이 개발도상국이다. 미국자본의 투자에 대해 ‘특혜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이같은 내용의 모양새가 워낙 사나워서 협정체결의 필요성 그 자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군다나 이 협정은 한-미FTA의 전단계이다. 그런데도 부처끼리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협상에 나섰다. 외교통상부는 양보하더라도 협정을 부랴부랴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정경제부-농림부-법무부-문화관광부 등은 양보할 수 없거나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버텼고,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까지 협정을 맺을 경우 심각한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결국 김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BIT는 국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지난 2월3일 참여정부는 뜸금없이(?)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3월과 4월에 각각 한번씩 예비회담을 거친 후에, 2007년 6월에 시한이 끝나는 미국의 무역촉진권한법(TPA) 일정에 따라 5월3일부터 본협상을 시작하고, 내년 3월말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어서 양국의 의회로부터 비준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칠레 FTA는 2년이 걸렸고, 한-싱가포르 FTA는 협상에 앞서 얼추 1년에 걸쳐 산-학-관 합동으로 연구절차를 거쳤다. 전문가들조차 이 협정의 손익대차표가 지닐 불투명-불평등-불확실성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는 마당에, 국익과 이해단체의 득실에 대한 차가운 평가와 국민적 공감을 이루어 내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뿐만이 아니다.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통계수치를 은폐-조작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다. 지난 4월11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대정부 질의를 통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3일 한-미FTA 협정의 효과와 관련한 보고서를 내면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72억7천만 달러로 추정되자 47억 달러로 대체해서 보고서에 끼워 넣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권 의원은 KIEP가 통상교섭본부에 보낸 보고서의 원본을 공개했다.
게다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이 요구한 4가지 핵심쟁점, 즉 약값 재평가제도 개정안을 취소하고,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며, 광우병 파동 때 금지된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할 것이며, 자동차배출가스의 기준강화방침을 취소해 달라는 요구를 정부가 깡그리 수용했다. 개가 웃고 소가 짖을 일이다. 국가간의 협정에서 있을 수 없는 희한한 진기록을 세운 셈이다. 정부쪽은 “한-미FTA는 정부가 오랜기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시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는 미국의 ‘압력’때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4대 핵심쟁점 모두를 몇몇 관료들의 밀실 조율을 통해 내 준 꼴이 된다. 따라서 협상다운 협상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셈쳐진다. 협상은 영어로 할 터이고, 더군다나 미국쪽은 수십년에 걸쳐 획득한 협상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미국과 견주어 볼 때, 한-미FTA 협상에 130여명의 협상단이 필요한 것으로 셈쳐진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에 이미 설치된 60여명의 협상단은 아세안과 3월6~10일, 인도와 3월23~24일, 멕시코와 4월 중순, 캐나다와 4월24~27일에 걸쳐 동시다발로 진행 중인 협상에 투입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 인력에서 일부를, 나머지는 신규 채용해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2달이 걸릴 뿐 아니라, 전문인력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을 터. 특히 중간 관리자(3~5급) 수십 명을 구하는 일이 문제인데, 김종훈 수석대표는 사법연수원생중에서 뽑아 2~3개월 훈련시켜 보강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무역대표부의 협상단은 13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가 한 분야를 5~10년 씩이나 다룬 전문가들이다. 더군다나 지난 89년 미무역대표부 피터 알가이어 부대표가 <세계은행 연차보고서>에서 미국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저쪽은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 그런데 3월 6일 예비협상이 시작되어 협정문 초안을 만들고 90일에 걸쳐 미국의회의 검토가 끝나는 5월 둘째 주에 이를 교환하여 1차 본 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예비협상 과정에서 기존 협상단의 일부인 10여명만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럴 경우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도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 협상단이 대거 차출되면 조직이 느슨해질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신뢰가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협상도 나라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 법. 작두날 위를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한 꼴이다.
더군다나 얼마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정부측 기관들이 정부가 통상협상을 추진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 기관들은 ‘세계화와 개방정책-평가와 과제’와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개방정책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전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과 협상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의견수렴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국회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대화와 타협을 위한 창구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특히 정부부처간 의견 조정의 강화 등 개방을 위한 국내 협상력을 강화하는 게 우선 되어야 하며, 비판 목소리를 사전에 청취하고 이를 설득할만한 객관적 증거제시에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협상 시작이 발표된 직후부터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조율이 된 듯한 막말을 연거푸 쏟아내고 있다. 곁방망이질에 이골이 난 이들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생떼를 쓰고, 심지어 대원군까지 거론하며 “쇄국 망국론”을 거들먹거린다. 특히 권태신 재경부 2차관은 지난 2월16일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FTA 협상과 상관없이 스크린쿼터는 축소돼야 하고, FTA 협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물러설 수 없는 일”이라고 헌신짝만도 못한 혀놀림을 했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청와대에서 “국내 이해단체의 저항 때문에 못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가지 전략적 고려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심사숙고해서 결정내린 것”이며, “한-미FTA는 우리의 자존심이 걸린 일로 압력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대통령은 “지금까지 개방한 나라가 성공도 하고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쇄국을 하면서 성공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면서 “FTA의 목표는 한마디로 경쟁력 강화이며,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세계 일류로 가자는 의미”라고 일갈했다. 한-미 FTA를 잡도리해야 할 노대통령은, 중국의 위협을 뛰어넘으려면 첨단산업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그게 진짜 문제라면, 한-미FTA보다는 선진서비스기술을 유리한 조건에서 끌어들일 수 있는 DDA가 더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에 대해서 대통령은 “어린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독립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소리쳤고, “한국 영화가 어느 수준인지 스스로 판단해 볼 때가 됐다”고 어름장을 놓았다. 스크린 쿼터 유지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대통령의 독선-독단-독주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참여정부의 스크린 쿼터에 관한 어록을 챙겨보면 이 정권의 도덕적 파산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다. 이창동 장관은 초심을 버리고 장관 말기에 축소안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정동채 장관도 취임 초기는 물론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스크린쿼터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연계하지 않는다는 게 문화부의 입장이며 대통령과 총리의 생각도 같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 희대의 거짓말쟁이는 4000억원을 지원하는 후속책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1년 전부터 문화부의 축소안을 가지고 미국과 협상을 해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덤터기 씌우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 정치장관은 “스크린쿼터 조정은 이미 전임 장관이 이야기했던 것”이며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스크린쿼터에 안주해 왔던 영화제작 체질을 개선하고 영화산업 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7년전 한-미투자협정의 협상본부장을 맡은 장본인이기도 한덕수 부총리는, 지난해 8월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대표들에게 “스크린쿼터가 국제규범에 부합하며 한국영화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면서 “통상문제 등을 고려해 스크린쿼터제를 대체할 다른 제도가 있는지 함께 연구하고 검토하자”고 약속했다. 약속을 어긴 그는 스크린쿼터를 미국의 요구대로 줄여버렸다. 사기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전 외교통상부의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는 한 신문과 단독인터뷰를 했다. 김 수석대표는 스크린쿼터 축소 등 미국이 요구해 온 4대 선결조건을 모두 승낙한 이유에 대해 “연예인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크고 선거지원 유세 등을 통해 정치인들과도 밀착돼 있으며” 따라서 “스크린쿼터 문제를 본협상에서 논의하면 협정이 깨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반대급부를 챙기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우리 기업들이 한-미FTA에 관련해서 정부한테 사전에 요청한 것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얼토당토 않는 말의 내용이 사납다.
블랙 코메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김현종 통상협상본부장은 2005년 2월부터 4월까지 3차례의 미국과 사전 점검회의가 끝난 뒤 로버트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로부터 “핵심쟁점이 풀리기 전에 본협상에 들어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서 김 본부장은 2005년 7월과 9월 두차례에 걸쳐 방미해서 물밑 이야기를 하고 그 해 9월 대통령에게 보고해서 결심을 끌어냈다. 그런데 한-미FTA의 핵심을 꿰차고 있는 김 본부장은, 얼마전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키로 했다’는 일부 신문 보도에 대해 “명백한 오보”라고 했다. 이어 “한·미간 FTA 협상개시설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으며 잠정적 합의도 이뤄진 바가 없다”고 딴청을 부렸다. 얼토당토 아니한 거짓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했다. 개꼬리 삼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국운을 좌지우지할 협상을 맡고 있다.
이들 관료들은 국정을 실제적으로 쥐락펴락하면서 ‘예외상태’라는 전가보도를 휘두르면서 자기들의 의견을 밀어붙여 왔다. 이들은 긴급상황(=예외상태)을 거들먹거리면서, 협상 전에 우리네 전략을 노출해선 안 된다며 ‘비밀주의’(=예외상태)를 내세운다. 늘상 이렇게 해서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확대-심회시켜 왔다. 전문성(?)을 내세워 오직 국익을 실증적으로만 연구-실천한다는 관료들은 이미 모든 영역을 자신들의 산하에 배치하고 있다. 정권은 짧고, 국민은 어리석고, 국회는 우습고, 관료체제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벼리로 삼고 있다. 한-미FTA에서도 그들의 전문적(?) 도덕성과 애국심이 유감없이 발휘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든든한 받침목이 ‘오직’ 미국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터득해 왔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이들은, 한-미FTA를 일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제대로 된 연구보고서도 없이 부랴부랴 추진하고 있다. 꼬리가 개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노 대통령에게 내내 막말을 하고 연거푸 발목을 잡아왔던 일부 언론들이 초기에 영화인과 농민들에게 ‘깜짝 관심’을 보이다가 한-미FTA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노 대통령과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다. 그리고 7년전에는 외교통상부가 앞장을 서드니, 지금은 재정경제부가 총대를 메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예전과는 달리 각 부처의 이익을 대변해서 반대하던 관료들도 지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목에 힘을 주고 주요 사안마다 대갈을 내뱉은 이른바 잘 나가는 지식인들은 이 사안을 나몰라라하고 있다. ‘굿 뒤에 날장구’칠려고 하는가. 이따금 이들은 FTA가 모두에게 ‘복음’이며, 일본의 끈질긴 견제와 중국의 치열한 추격을 따돌리고 국민소득 ‘3만달러’의 선진 통상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거대시장과 연계하고 미국의 기술-자본을 한국경제가 성장하는데 촉진제로 사용하자고 일갈한다. 날이 선 송곳비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더군다나 국민의 참여에 큰 덕목을 둔 이 정부가 이 사안에서 철저히 국민을 배제하고 있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한-미FTA를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종의 쇼크요법”이라는 묘한 처방을 내었다. 노 대통령이 특유한 뚝심과 모험주의에서 비롯한 오만-오기를 부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24일까지 미국의회는 이 협정의 청문회를 위해 국내외 도처로부터 의견서를 접수했고, 90일동안 이 협정을 검토한다. 뿐만이 아니다. 미의회조사국의 보고서는 한국에서 점증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에 대응-견제하는데 FTA가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말은 동아시아지역에서의 협력-연대가 어렵고, 경쟁-대립이 격화되는 것을 뜻한다. 한-미 FTA에 관련된 로드맵이 한미 군사동맹의 전략적 변화와 맞물려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저쪽 국회는 저렇게 뛰고 있는데, 우리네 국회는 무었을 했는가. 총리의 골프공과 시장의 테니스공의 진실공방에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의원들은 중차대한 사안을 내팽개치고 지자체 선거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당답지 못한 열린 우리당과 야당답지 못한 한나라당이 나라를 수렁에 빠뜨리고 거들내고 있다.
애시당초 참여정부는 2003년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일정표를 만들었다. 단기적으로 일본-싱가포르-아세안-멕시코-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중장기적으로 중국-인도-유럽연합, 이어서 미국과는 마지막으로 협정을 맺는 것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핵심정책인 동북아에서 우리의 역할과 남북문제를 뒤로 하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몇몇 관료들이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왜 이렇게 조바심을 보일까.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이 협정에 참여정부가 도리깨침을 흘리고 부랴부랴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민정부는 실명제와 하나회를 해체했고, 국민의 정부는 6-15 공동선언과 남북 정상회담에 큰 물꼬를 텄다. 그런데 비해 내놓을만한 업적이 없는 참여정부가 포괄적 대북문제에 대한 미국의 양해(?)와 그것을 통한 정권재창출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빅딜’(?)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우리나라가 양극화 위기를 맞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소갈머리 없는 세계화정책에서 비롯됐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시장을 ‘마구’ 열어젖히다가 오늘의 불행을 자초했다. 한-미FTA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협상대상이 거의 모든 분야(농업, 섬유, 자동차-의약품을 포함한 상품무역, 원산지-통관, 동식물 검역, 기술장벽, 서비스, 금융서비스, 투자, 통신-전자상거래, 정부조달, 경쟁,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분쟁해결-투명성, 무역규제)에 걸쳐 있다. 때문에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강도 있게 이루어져서 양극화 현상이 극대화될 터이고, 따라서 사회통합은 송두리째 무너질 게 뻔하다. FTA는 기업의 과다한 이윤추구를 규제하는 공공제도를 무역장벽-투자장벽으로 보고, 이를 사유화-영리화시켜 파괴-제거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교육-의료 공공성 강화, 핵심국영기업의 보호,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제도의 필요성, 극심한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의 구조조정 지원책 등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조치는 물 건너 간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고, 치루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 액수일 게 불 보듯 뻔하다.
누가 弔鍾을 울리는가. KORUS FTA! 최근 결정된 한미FTA의 공식 명칭이다. 두 나라의 이름(KOR+US)을 섞어서 기발하게 작명한 것인데, 코러스가 조화(chorus)라는 냄새도 풍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코러스FTA가 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여론을 폭 넓게 모아서 우리의 입장을 제대로 정리해야 한다. 미국은 협상문제의 제기부터 협상전략을 수립하기까지 민간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크게 고려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국내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나라의 이로움을 위해서는 유럽식과는 사뭇 다른 미국식 FTA의 자국중심주의, 협상속도, 목표와 내용에 대해 찬찬히 톺아 볼 일이다. 만일 우리의 요구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다면 시간적 여유를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하는 법. 종전에는 미국에 끌려다니면서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굴복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 낭패보기가 일쑤였다. 만약 이번에도 힘의 논리에 따라 ‘은밀히’ 그리고 ‘불평등하게’ 협정이 체결된다면, 한-미FTA는 제2의 을사늑약이 될 게 뻔하다. 꼬챙이는 태우고 고기는 설익는 꼴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터. 여우볕에 콩 볶아 먹듯이 나랏일을 섣부르게 처리해서 헤어날 길 없는 수렁으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조바심과 조급함을 털어버리고, 이 협정에 신중하게 접근해서 문제가 계속 덧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노적가리에 불지르고 싸라기 주워 먹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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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미FTA저지 교수학술공대위 소속 박영근 중앙대 교수님이 보내주신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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