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다. 따라서 현대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이다. 선거는 국민들이 주권을 가진 진정한 지배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민주주의는 국민들이 “투표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만 끝나면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는 루소의 비아냥거림처럼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특히 일부 진보세력의 경우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는 “노동계급의 급진화를 예방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술책”이라는 입장을 보여 오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린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막기 위한 각계각층의 처절한 투쟁,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아래 한국을 세계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대중국전초기지로 만드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들이 5.31지방선거에 의해 여론과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같은 분석에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물론 정치를 단순히 선거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은 진보정치의 무덤에 다름 아니다. 곧, 대중투쟁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중투쟁 못지않게 선거투쟁도 중요하고 선거가 단순히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점에서 한미FTA저지투쟁과 평택미군기지이전 반대 투쟁이 5.31 지방선거를 외면하고 거리투쟁, 대중투쟁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문제는 단순한 5.31지방선거를 대중투쟁과 결합하여 한미FTA저지 투쟁의 장,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의 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5.31선거가 지방정부를 뽑는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이를 한미FTA투쟁과 결합시킨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지방선거라는 것이 중앙정부 수준에서 어떠한 정책을 추구해 나갈 것인가를 놓고 정책대결을 벌리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자리는 아니라 개별 지방의 수준에서 지방적 의제를 가지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기계적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중요한 전국적인 선거, 특히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이유로 모든 정치세력이 사생결단식으로 총력전을 벌리고 있는 중요한 국민적인 투쟁의 장을 단순히 중앙정치가 아니라 지방정치에 관한 지방선거라는 이유로 남의 일 구경하듯이 방치해 둘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한미FTA는 분명히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정책이지만, 중앙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장인 내년 대선까지 기다리고 있다간 한미FTA문제는 종을 치고 말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현대정치는 정당정치일 수밖에 없는 바, 참패의 위기에서 한나라당이 지배해온 “부패한 지방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에게 표를 호소하고 있는 열린 우리당이 중앙정치차원에서 한미FTA를 추진하는 집권여당과 다른 정당이 아니다. 또 신자유주의정책에 의한 민중생활의 피폐화 등 노무현정부의 실정덕분에 5.31 지방선거에서 압승이 예상되는 한나라당이 노무현정부와 열린 우리당의 한미FTA 추진에 대해 좌파정권이 뒤늦게 마나 정신을 차린 것이라며 박수를 치며 칭찬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다른 한나라당이 아니다. 나아가 한미FTA가 실행될 경우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바 이는 많은 지방의 와해와 파괴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미FTA와 지방문제는 밀접하게 괸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쌀 개방의 경우 농촌의 붕괴를 가져다 줄 것이며, 이는 중요한 지방의 사활의 문제이다.
따라서 한미FTA공대위는 보수 양당과 보수언론들이 설정해 놓은 5.31 지방선거의 의제와 소위 메니페스토 운동을 넘어서 5.31지방선거를 한미FTA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빨리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에 대해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밝히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한미FTA에 대해 찬성하는 정당에 대해 낙선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가자, 5.31지방선거를 한미FTA 심판의 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