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한ㆍ미 양국 정부는 한ㆍ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에 정권의 명운을 건 듯, 어떠한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임기 내에 체결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한ㆍ미 양국은 전 세계 주둔 미군을 새로운 유형의 전쟁 및 분쟁에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재편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조응하도록 주한미군을 재편하고 한ㆍ미ㆍ일 삼각동맹을 공고히 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초민족 금융자본의 이윤창출에 안전성을 꾀하는 한 편, 한ㆍ미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경제․사회 전반에 미국식 기준을 확산하여 초민족 자본의 권한을 극대화하고, ‘서비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첨단화함으로써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하게 편입하겠다는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비전’이다.
벌써부터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 재편 계획의 일환인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주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여 민중의 생존권과 주권을 짓밟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이 몰고 올 파괴적인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기지화, 농업ㆍ농촌의 붕괴, 빈곤의 심화, 노동권․여성권․건강권․교육권 등 민중의 권리의 파괴로 민중의 삶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ㆍ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가 결성되는 등 한․미 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 또한 본격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세계적인 민중 삶의 위기를 야기하는 ‘금융ㆍ군사세계화’에 맞서 강력하게 분출하고 있는 ‘대안세계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미 FTA 반대투쟁의 의미와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금융ㆍ군사세계화’ Vs. '대안세계화‘
1970년대부터 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한 ‘금융세계화’는 자본의 위기를 민중에게 전가하는 과정이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국제적인 금융․무역기구들은 금융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각 국에서 폭발한 외채․외환위기를 매개로 도입된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2001년 개시되어 현재까지 협상이 진행 중인 ‘도하개발의제’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을 꾀하는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정확하게 민중의 권리를 공격하며 세계의 부와 자원을 자본주의 중심부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어서, 이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점차 커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은 세계화의 이익을 방어하고 저항을 무력화하는 바탕이 된다. 즉, 현재의 금융세계화는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되며 전쟁과 폭력을 동반한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각 국의 노동자, 농민, 여성, 원주민,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국가들의 무기력을 넘어 인민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고 공동체와 사회를 재건하며, 사회․경제적인 변혁을 추동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퇴행적인 ‘국수주의’, 코퍼러티즘에 기반을 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구별되는 ‘대안세계화’라는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 1999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뒤를 잇는 새로운 무역라운드가 출범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시애틀에 결집했을 때, 지배계급과 주류언론은 이를 두고 ‘세계화라는 대세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인 세력들’이라며 ‘목표와 지향이 불분명하여 곧 사그라질 흐름’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시애틀 투쟁 이후 이러한 사회운동들의 국제적인 연대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으며, 2001년 등장한 ‘세계사회포럼(WSF)’을 매개로 하여 약탈과 파괴를 획책하는 ‘금융․군사세계화’를 거부하고, 민중의 권리에 바탕을 둔 대안적인 전망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에서 세계사회포럼까지: 대안세계화운동의 흐름 개괄
대안세계화운동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주요한 계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1994년 1월 1일 개시된 멕시코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를 그 발단으로 볼 수 있다. 이 날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로,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이 날을 기점으로 멕시코의 뿌리 깊은 사회 구조적 모순과 NAFTA로 가시화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다.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멕시코 정부는 1917년부터 지속해온 토지공유제인 ‘에히도(Ejido)'를 폐지했다.1)
이는 곧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자치권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봉기는 이에 연원한다. 이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의 언론 통제를 통한 고립작전에 맞서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에 알려냈으며, 1996년 7월에는 자신들의 근거지 정글에서 국제적인 회합을 개최했다. 이 회합은 싸빠띠스따의 투쟁을 국제적인 쟁점으로 만들어내고, 또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연결시키는 데 기여했다.2)
199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추진된 다자간투자협정(MAI)은 싸빠띠스따 무장봉기 이후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공동행동을 촉발했다. 이 협정이 사회운동들의 타깃이 된 이유는, ‘단기성 투기자본’까지 투자로 간주하는 등 투자의 범위를 넓게 정의하고,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사회운동들은 이를 ‘초국적 자본을 위한 권리 헌장’으로 규정하고, 이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투쟁을 비롯하여, 호주, 미국, 유럽 곳곳에서 이 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진행되었다. 사회운동들은 이러한 흐름을 모아 1998년 10월 파리에서 ‘MAI 반대 국제민중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국제상공회의소를 점거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프랑스와 캐나다가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결국 OECD 내에서 ‘투자자유화 협정’을 체결하려던 시도는 좌초되었다.3) 이 투쟁을 계기로 ‘초국적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는 사회운동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MAI 반대투쟁의 경험은 1999년 시애틀 투쟁으로 이어진다. 시애틀 3차 WTO 각료회의는 우루과이라운드의 뒤를 잇는 WTO 뉴라운드의 출범을 목표로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공산품뿐만 아니라 농업과 서비스를 WTO 내의 이슈로 포괄해 내었다면, 뉴라운드에서는 이 두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무역자유화 방안과 투자자유화, 지적재산권 강화 등 새로운 의제를 포함시켜 WTO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른바 ‘시애틀 전투’로 인해 보기 좋게 무산되었고,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굵직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북반구 NGO를 중심으로 하는 회담장 내 로비전략(장내전략)’과 ‘사회운동․대중조직들의 대중투쟁(장외전략)’ 중 어느 쪽이 중심인지 분명하지 않았고, 제기된 요구도 너무 다양해서 어느 한 쪽으로 수렴되기도 힘들었다.
미국노총(AFL-CIO)은 중국의 WTO 가입으로 미국보다 노동기준이 낮은 중국노동자들과 미국노동자들이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게 되어, 미국의 노동조건이 ‘하향평준화’할 것이라며 ‘중국의 WTO 가입 반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또한 WTO 협정 안에 ‘무역기준’과 관련된 조항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내걸었다.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일정정도 완화하여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환경단체들은 마찬가지로 WTO 협정 안에 ‘환경기준’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하였다. 여기에다 ‘자유무역’을 통한 개발의 혜택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개도국 및 최빈국’ 정부의 주장까지 더해져, 시애틀 투쟁은 ‘지향이 불분명한 투쟁’으로 묘사되었으며, 다양한 운동들의 ‘무지개 동맹’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각 국 각료들의 발을 묶어 회의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 결국 ‘각료회의 무산’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던 직접행동은 그 뒤 프라하, 제노바에서도 재현되었다. 또한 ‘자유무역이 빈국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선동에 대한 세계 민중의 의심은 더욱 커졌다.
2001년 1월에는 세계사회포럼이 시작되었다. 시애틀, 워싱턴 등지에서 일어난 국제적인 시위의 성과를 모아내고, 이를 계기로 새롭게 형성된 사회운동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공유하여 이를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1차 세계사회포럼 당시 ‘시애틀 3차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이후 성장해 온 운동들’이라고 밝힌 여러 조직들이 주축이 되어 ‘세계사회운동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회의는 매년 개최되어 세계 사회운동이 집중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을 밝히고, 국제적인 공동 행동을 조정하고 이에 대한 결의를 모으는 역할을 해왔다. 2003년 3회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세계 사회운동들의 교류와 소통을 상시적으로 이루어내자는 취지에서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를 건설하게 된다.4)
그 이후에 벌어진 2001년 6월 제노바 G8 정상회의 반대투쟁, 2002년 이라크 침공 직전에 열렸던 2․15 국제반전공동행동 등은 바로 ‘세계사회운동총회’를 매개로 조직되고 조정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2003년 칸쿤 5차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2005년 홍콩 6차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은 시애틀 투쟁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였다. 우선, 회담장 안에서 개도국․최빈국 정부를 지렛대 삼아 협상의 방향을 트는 전술보다는 장외에서 대중적인 직접행동을 펼치는 전술이 더욱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무역협정 내 노동․환경 기준 마련’보다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 중단’이 중심적인 주장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초국적 자본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처들이 공격하는 민중의 제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투쟁의 목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에, 식량주권, 토지․종자․농업지식에 대한 농민의 권리 확대, 물, 에너지, 교육, 보건의료, 문화에 대한 상품화/사유화 반대, 지적재산권 확대 반대 - 의약품 접근성 확대, 이주자 상품화 반대 -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시민권 확대 등의 요구가 제기되었다.
시애틀 투쟁을 계기로 사회운동이 다시금 활발해지고, '도하개발의제‘라는 새로운 무역협상라운드에 반대하는 투쟁이 거세짐에 따라,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커다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은 WTO를 통한 협상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한편, 이러한 다자간 협상보다 훨씬 체결이 용이한 양자간, 지역별 협정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미국은 NAFTA의 범위를 미주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체결을 시도하고 있으며,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 태국, 한국 등 개별 국가와의 양자간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 또한 사회운동들의 의제가 되었으며, 대륙을 아우르는 ’지역 연대‘가 이러한 협정을 매개로 하여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연대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미주대륙이다.
이 지역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사회동맹>(Hemisperic Social Alliance), (Continental Campaign against FTAA)등 전 대륙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2001년 퀘벡, 2003년 마이애미, 2005년 마르델플라타에서 열린 FTAA 체결을 위한 미주지역정상회담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유럽에서는 유럽사회포럼을 매개로 하여 ’유럽의 신자유주의적 통합‘과 민족이라는 범위로 제한하여 시민권을 부여하는 유럽연합의 원칙을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기반으로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NAFTA 발효, WTO의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의 개시와 함께 분출한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건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형성된 ‘세계사회운동총회’ 및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를 경과하며 ‘대안세계화’라는 이념과 결합하고 있다. 또한 ‘군사세계화’가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한다는 분석에 따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활성화된 국제반전운동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안
WTO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회운동들은 이러한 협정이 초국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협상 과정이 세계적인 무역질서 내에서 각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강탈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구축하고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투쟁을 세계화하자, 희망을 세계화하자”라는 국제소농조직 비아캄페시나의 구호처럼, 국제금융․무역기구와 초민족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아닌 인민들의 운동의 국제주의(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옹호한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안은 국제적인 교류를 단절하는 “쇄국”이 아니다. <미주사회동맹>은 대륙차원의 공동행동의 경험과 ‘아메리카사회포럼’ 등을 계기로 한 토론을 통해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Alternatives for the Americas)5)을 발전시켰다.
이 문서에서 <미주사회동맹>은 “우리는 세계화라는 형태로 추진되는 신자유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이것의 부정적인 효과를 감축하는데 그치지 말고 긍정적인 대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지배적인, 그리고 외적으로 강요되는 형태의 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경제를 폐쇄하고 보호주의적인 장벽을 세워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고립주의적인 무역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도 아니다. …… 우리는 다른 경제적 논리를 바탕으로 세계적, 그리고 대륙적 경제를 규제하기 위한 대안적인 규범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세계사회포럼' 및 대안세계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금융거래과세를 위한 시민연합>(ATTAC France) 역시 국제적인 교환에 대해 “국제적 교환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것은 수단들에 불과하다. 그 수단들은 각각의 상황들에 맞게 민주적으로 정의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목표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6) <미주사회동맹>과 <금융거래과세를 위한 시민연합>은 국제적인 교환이 실질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 민중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실현하는 것은 각 국 정부의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각 국 정부는 공공서비스가 시장화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사적 부문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유치산업(Infant Industry) 및 취약인구의 보호, 식량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조처들이 균등한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 외채를 매개로 한 국제금융기구의 구조조정은 중단되어야 하고 각 국 정부는 독자적인 금융․재정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제적인 무역과 투자는 통제되어야 한다. 무역과 투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초민족 자본의 이해에 일차적으로 봉사해서는 안 된다. 민족적 발전전략은 ‘외국인 직접투자’에 종속되지 말아야 하며, 투자는 높은 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생산, 경제 안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각 국 정부는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 투자, 특히 투기성 자본의 이동에 대해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웃 국가들, 유사한 국가들 사이의 지역적 토대에 기초한 교환이 선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경의 개방은 사회적, 환경적, 재정적 조화를 요구한다. 또한 개발도상국 사이의 연대가 조직되는 것이 본질적이다. 북이 획득 불가능한 자원을 남으로부터 이전하기 위해 활용되는 북-남 간 교환은 새로운 토대 위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일차원자재의 가격안정화 체계의 구축, 환율의 안정성과 균등성을 보장하는 국제적 화폐 체계의 개혁이 시급하다.
넷째,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교육, 의료, 에너지, 물, 의약품 등에 대한 전 민중의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서비스는 사유화되어서는 안 되며 시장의 규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적 권리는 국가의 책임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다섯째, 각 국 정부는 특정한 사회, 문화, 경제적 맥락에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하며,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생명다양성의 보장, 원주민의 지식, 전통적인 농업 지식 등은 보호되어야 한다. 또한 생명특허는 거부되어야 한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제시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및 최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ratado de Comercio de los Pueblos)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를 저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ㆍ미 FTA 반대투쟁의 의미와 방향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개시된 ‘농산물수입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은 1998년부터 김대중 정부의 ‘외국인투자의 대폭 유치’에 바탕을 둔 경제위기 극복전략의 일환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한․일 투자협정(BIT)’, ‘한․미 투자협정(BIT)’, ‘한․칠레 FTA’ 등 양자간 투자 및 무역 자유화 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각각의 협정을 반대하기 위한 투쟁은 그 주체가 특정한 부문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 ‘한․칠레 FTA는 농산물 수입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 ‘한․일 FTA는 자동차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상징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에 종사하는 부문의 방어투쟁의 성격으로 조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투쟁이 조직되었을 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국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시장을 지키고 개방의 속도와 일정을 조절하기 위해 피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우선 시행하고 FTA를 신중하게 체결하자고 주장했던 자본의 요구와 차별적인 전망을 제출하기 힘들뿐더러, 부문을 넘나드는 연대를 조직하기도 어렵다. 또한 정부는 한․칠레 FTA, 한․일 FTA 협상 과정에서 ‘피해가 두드러지는 계층’의 반발로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었던 선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향후 10년 간 119조원을 쏟아 부어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5년 간 4000억 원 규모의 ‘한국영화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FTA 체결로 인한 피해 계층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 반대투쟁이 피해산업에 종사하는 부문의 방어투쟁에 머무른다면 힘을 갖기가 어렵다. 이제 막 본격화하고 있는 한․미 FTA 반대투쟁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FTA가 제기되는 배경과 노무현 정부의 추진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미 FTA를 ‘미국판 내선일체’라거나 ‘제 2의 을사늑약’으로 묘사하는 등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식의 비판은 이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금융․군사세계화를 동아시아에서 완성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에 맞서는 투쟁이다. 또한 민중의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더욱 확대할 금융․군사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것을 한국사회의 비전으로 제시하는 노무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이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한․미 FTA 반대투쟁은 민족적 이익을 방어하는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민중의 국제적인 연대를 실현하는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금융․군사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적 대안을 형성하는 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FTA를 둘러싼 대립은 ‘무역’을 둘러싼 ‘국가 대 국가’의 대립이 아닌 ‘더 많은 자유화를 얻으려는 초국적 금융자본 대 민중의 권리’의 대립이다. 또한 한․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고 한국 사회․경제 전반에 미국식 기준을 확산하여 초민족 금융자본의 활동에 안전성을 더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을 철저히 보장하는 체계가 완성될 때, 동아시아 지역 민중의 권리는 더욱 후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 반대투쟁은 피해산업에 대한 몇 가지 지원조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중단될 수 있는 투쟁이 아니며, 세계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는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하여 동아시아 민중, 세계 민중의 권리를 확장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1) 이는 191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에 의해 제기되어, 1917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후 이어져오던 제도였다. 이 제도에 따라 토지를 가지지 않은 농민가족, 혹은 마을주민들은 토지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이 토지는 집단 소유를 원칙으로 하여 분할할 수도, 매매할 수도 없었다. NAFTA 체결을 앞두고 멕시코 정부는 에히도를 폐지하여 초국적 자본이 이 토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7월에 열릴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민주혁명당(PDR)을 비롯한 모든 정당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과 함께, 전 민중이 함께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자’는 제안을 담은 6차 라깐돈 선언을 발표한 후, 2006년 1월 1일부터 전국을 횡단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본문으로
3) 그러나 MAI는 WTO 및 각종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 내 ‘투자’에 관한 조항의 원형이 되고 있다. 본문으로
4)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사회운동[노동조합운동]’과 ‘[북반구의] 정당’들이 새로운 전략을 세우거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데 곤란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의 확산으로 민중들의 기본적인 정치적․시민적 권리가 침해되고, 공포가 확산되고 인종주의가 강화되고, ▷ 신자유주의가 인민의 삶의 위기를 더욱 가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의 동맹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결성 취지로 밝혔다. 본문으로
5) 미주지역 민중의 입장에 근거하여 FTAA에 대항하는 대안을 제시한 문서로, 전문은 www.asc.hsa.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6) ATTAC France, "Las trampas del libre cambio", http://www.france.attac.org/article.php3?id_article=5580 본문으로
-=====
>* 월간 사회운동 2006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