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의사,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한미 FTA와 사회정책
한미 FTA가 단지 관세장벽을 허무는 협정이 아님은 이미 4대 선결조건에서 명확해졌다. 4대 선결조건 즉 미국산 쇠고기 개방, 자동차 환경관련 및 특소세 관련 세제 개편, 스크린 쿼터 축소, 약값절감정책 도입 불가 등은 관세장벽과 무관한 것이다. 이것들은 각각 검역정책, 환경 및 보건정책, 문화정책 등으로 공공성을 지키려는 사회정책들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애초에 시작도 되기 전부터 이러한 사회정책을 ‘비관세장벽’으로 지목하여 사전조건으로 내걸었고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이를 관철하였다.
사회정책은 기본적으로 사적 이익이나 경제적 이익을 사회공익적 목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이러한 사적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제한하는 모든 법률과 제도를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보는 협정이다. 이를 위한 강력한 제도가 바로 한미 FTA 협정의 서비스의 포괄적 개방, 역진방지(래칫), 투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 및 투자자-정부 제소 제도이다.
1) 서비스분야 포괄적 개방
한미 FTA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나 현 이명박 정부나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강조하면서 내세웠던 것이 바로 이 서비스 상품의 포괄적 허용(네거티브 리스트)이다. 현재 협정문에 유보조항으로 명문화된 내용 이외에는 새로운 상품규제를 할 수 없게 한 조항이 이것이다.
한미 FTA에서 말하는 “서비스”는 사회정책의 모든 분야를 말한다. 철도, 가스, 전기, 물, 교육 및 의료, 교도소 및 국방, 연금, 부동산 등 모든 분야가 서비스 상품이다. 흔히 상상하기 힘든 분야도 서비스분야로 포함되는데 호주의 경우 혈액공급 ‘서비스’를 개방하였다가 미국이 이 부분을 독점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 기업의 운영에 문제가 생겨 이에 따른 혈액공급 부족사태로 큰 사회문제가 발생한 바도 있다.
한미 FTA 협정에 규정되지 않은 모든 서비스는 개방되며 더 이상 규제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금융서비스의 경우 새로운 규제를 할 수 없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직접적 계기가 된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2) 역진방지
래칫조항으로 불리는 조항으로서 한번 개방된 조치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규정이 한미 FTA의 핵심적인 문제중 하나다.(이른바 ‘낙장불입조항’) 현재유보조항에 열거된 내용들은 이러한 개방조처를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경제자유구역내의 영리병원 허용이라든지 교육서비스에서의 외국인학교 설립규정의 내용 등은 되돌릴 수 없다. 이는 한미 FTA 위반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현재에도 매우 많은데 이미 양허된 분야들 예를 들어 하수처리관련 내용이나 여러 환경서비스들, 가스나 전기분야의 개방된 분야들이나 철도분야의 개방된 분야들 중 현재유보조항에 해당되는 부분들은 다시 이를 규제하거나 재국유화 할 수 없다.
3) 투자에 대한 매우 넓은 규정과 투자자 정부 제소 제도
한미 FTA에서는 다른 FTA와 달리 투자를 매우 폭넓게 규정했다. 예를 들어 한미 FTA 에는 기업의 민영화관련 사업권을 '투자 계약'이라는 내용으로 독립적으로 포함시킨 바 있다. 다른 FTA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한미 FTA가 보호해야할 사업권을 규정한다.
“투자자가 전력 생산과 배전, 상하수도 및 통신과 같이 국가를 대신하여 대중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권리, 또는 대중이 이용하는 도로, 교통, 운하의 건설과 같은 기반 시설 사업권"
간단히 말하면 공공 서비스 사업을 한번 민영화하면 이를 투자의 내용으로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민영화된 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물론 공기업이 앞으로 민영화 할 부분을 재국유화하려 할 경우 미래유보조항에 포함되어 있는 부문의 경우 가능은 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국유화조치는 투자자-정부 제소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한미 FTA가 지적하고 있듯이 전기, 상하수도, 통신과 그 외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도로, 교통, 운하 등 모든 공공서비스 일반이다.
여기에 한미 FTA는 투자의 내용에 ‘시장점유율’까지 포함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을 강화하여 연금상품의 시장지분이 삭감되면 투자자 정부제소대상이 되며 건강보험을 강화하여 민영의료보험의 시장이 잠식되면 이 또한 투자자-정부 제소대상이 된다. 한마디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사회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것 외에 다시 공공성을 강화할 길이 없어지거나 지극히 어렵게 되는 것이다. FTA를 왜 사유화 또는 민영화나 상업화로 가는 편도차편이라고 부르는가가 여기에서 설명이 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 투자자는 단지 미국기업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SSM 규제가 한 EU FTA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것이 단지 영국의 테스코만이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재벌인 것에서 보이듯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려워지는 것은 미국기업에 대한 규제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기업도 마찬가지다. 또한 한국기업의 경우 웬만한 대기업은 외국인 투자자가 상당수 지분을 차지한다. 결국 기업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미국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기업에도 해당한다. 한국 기업들이 한미 FTA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수출을 일부 늘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기업의 권력강화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한마디로 자본에게는 최대한의 권력을 주고 한국 국민에게는 사회정책의 공공적 강화의 가능성을 박탈하고 따라서 사회적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 한미 FTA다. 사익을 제한하고 공익을 강화하는 것을 그 요체로 하는 사회정책의 시행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한미 FTA에는 사회정책의 집행을 방해하는 직접적 요소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 다른 국가와 무역협정을 맺었을 때 이를 미국 측에도 적용해야 하는 미래 최혜국 대우 조항도 있어서 한 EU FTA의 경우 조금이라도 미구에 유리한 조항이 있으면 이를 한미 FTA에도 곧바로 적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금융 세이프가드를 엄격한 전제조건을 붙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점, 공기업 상업적 운영 원칙 도입, 지적재산권에 대한 대폭 강화,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규제완화 등 독소 조항 몇 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협정 전체가 재앙인 협정이 바로 한미 FTA다.